설명(해제) |
溪堂雜稿는 을사조약으로 국권이 강탈당하자 이에 대한 통분으로 황제와 유생 및 백성들에게 유서를 남기고 음독자살한 淵齋 宋秉璿(1836~1905)의 문집이다. 송병선의 문집 淵齋集은 계당집고를 바탕으로 글을 취사하고 윤문한 것이다. 즉 계당잡고는 연재집의 원형적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계당집고 1은 詩 77제 94수, 疏 5편, 獻議 3편, 書 108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夢圃隱先生有感」은 당대의 암흑세계를 피해 산속에서 자신의 곧은 절개를 지키겠다는 다짐의 내용이고, 「山齋感吟」 4수 역시 산에 은거하면서 눈물 속에 春秋를 읽는 작자의 심경을 읊었다. 「送李文翁(憲熙)西歸」는 작자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李憲熙와 함께 한 달여 동안 經과 禮를 토론한 후 이별할 때에 지어준 시로, 경서를 품고 세상과 사직하여 心貞을 지키라고 당부하였다. 「棲碧亭 拈宋子大全鳳棲寺韻 聯句」는 金文洪・金頤壽・卞孝錫 등등과 함께 지은 시이다. 「毅皇殉正日(三月十九日) 瞻謁萬東廟」은 明 毅宗이 죽은 날에 그 감회를 읊은 시이다. 「請討凶逆疏」와 「再疏」는 고종황제가 殉社를 각오하고 조약을 파기할 것과 을사오적을 처형할 것을 역설하였다. 「中和殿奏箚」에는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방책으로, 을사오적 처단, 인재 등용, 여러 나라와 맹약을 맺을 것, 암행어사 파견, 재정 확충, 군비 강화 등등의 10조가 실려 있다. 「遺疏」는 자결하기 전에 쓴 상소로, 자신이 황제를 알현하려고 기다리던 중 납치되어 대전으로 호송된 일을 아뢰고, 황제에게 심기일전하여 나라를 살릴 것을 당부하였다. 書는 시국에 대한 통탄, 경서의 의문점에 대한 답변, 성리학에 대한 논의 등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寄訣家弟與子姪輩」와 「又訣家弟」는 자결하기 전 일가친척들에게 후일을 당부하는 내용이다. 「答河道三」・「答趙茂朱 別紙」・「答金允範論語問目」・「答林士尙」 등은 경서에 대한 질문에 답한 것이고, 「答朴明集」은 喪禮에 대해 답변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