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해제) |
계당잡고 4는 記 61편, 跋 62편, 銘 4편, 贊 3편, 告文 4편, 祭文 7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송병선의 작품에는 시대에 대한 아픔과 한탄이 곳곳에 배어 있다. 「巖棲窩記」와 「景賢堂記」는 현 세태를 보고 은거하려는 선비들의 방문을 받고 지어 준 것이다. 암울한 현실에서 몸을 깨끗하게 보존하고, 독서하면서 천년을 세월을 기다리는 것은 부끄러움이 없는 행실이라고 격려했다. 「遊月出天冠山記」는 월출산과 천관산을 유람하고 쓴 산수유기이다. 「考巖書堂記」는 철폐된 고암서원 자리에 서당을 세우면서 지은 것이다. 작자는 천하가 암흑천지가 되었을 때 서원이 철폐되었으니 천하의 치란은 송시열의 도와 연관되어 있다며, 이제 서당이 세워졌으니 천하가 다시 밝아질 수 있도록 衛正斥邪와 尊華攘夷의 도에 힘써야 한다고 역설했다. 「書主簿金公錄券後」에서는 사람은 누구나 똑같은 성품을 받고 태어나는 법인데, 어찌해서 忠義는 고인들만이 타고났느냐며, 이순신 장군이나 권율 장군처럼 뛰어난 인물이 없는 것을 한탄했다. 작자 송병선은 名士라 많은 사람들이 조상의 문집을 가져와서 서발문을 요구하였는데, 송병선의 글을 얻어 조상의 덕을 빛내려는 의도에서였다. 「書朴寅燮先狀後」에는 이러한 사람들에 대한 작자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곧 발문 하나로 조상의 덕을 빛낼 수 없으니, 그보다는 조상의 뜻을 잘 받들어 몸소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조상의 덕을 빛내는 참다운 방법이라는 것이다. 「聖賢遺像贊」은 堯・舜부터 孔子・孟子・晦菴・尤菴에 이르기까지 18인에 대한 찬을 지어, 유학의 道統에 대한 견해를 드러내었다. 朱子 다음에 退溪나 栗谷이 아닌 송시열을 배치한 점에서, 작자의 송시열에 대한 존모의식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